"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그 영을
질투하실 정도로 그리워하신다"라는
성경 말씀을 여러분은 헛된 것으로 생각합니까?
(약 4:5)
"우리 안에 살게 하신 그 영"의 영은
헬라어로 <프뉴마>입니다.
이 <프뉴마>는 구약의 <루아흐>의 대응어입니다.
<프뉴마>와 <루아흐>는 "성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더불어서 창세기 2장에서 인간의 코에
불어 넣으신 생기를 <루아흐>로 보고
창조 때부터 인간 안에 성령이 있어서
인간을 영적인 존재라 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에서 '생기'는 <루아흐>가 아니라
<느샤마>로 "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숨<느샤마>"을
인간에게 불어넣으셨을 때
인간이 "생령"이 되었다(창 2:7)고 하고,
이 생령을 히브리어로 <네페쉬 하야>라고 합니다.
특히, 이 "생령"이 되었다는 것을
인간과 동물의 구분점으로 보고
인간이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로
통상 알려져 있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큰 부분을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생령이라는 <네페쉬 하야>란 단어는
인간에게만 사용된 단어가 아니라,
아담이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줄 때
<네페쉬 하야>가 동물에게도 사용된 것(창 2:19)입니다.
두 사건의 절수 차이는 12절 밖에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2장의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의 사용을 볼 때,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근거로
생령(네페쉬 하야)에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히브리어 본분상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야고보서 4장 5절의 "우리 안의 영"은
창조 시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생기"로
보는 것은 약간은 무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 4장의 위의 말씀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게 하신 그 영은
<느사먀>가 아니라 성삼위일체 중 한 분인 성령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 영까지 시기하신다는 말씀은,
성부 하나님께서 일체인 성령을 시기하실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이야기는
시적 사랑의 고백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시기할 정도로 인간 널 사랑해!"
라고 고백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도 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 한 편과 십자가가 생각납니다.
허림의 "마중"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꽃으로 서 있을게"
신은 너무나 인간을 사랑하셔서
높은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세워놓고
목을 길게 빼고, 팔을 벌려서,
사랑하는 인간을 마중 나오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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