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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5(2023.10.20)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그 영을

질투하실 정도로 그리워하신다"라는

성경 말씀을 여러분은 헛된 것으로 생각합니까?

( 4:5)

 

 

 

 

"우리 안에 살게 하신 " 영은

헬라어로 <프뉴마>입니다.

<프뉴마> 구약의 <루아흐> 대응어입니다.

<프뉴마>  <루아흐> "성령" 의미하기도 합니다.

더불어서 창세기 2장에서 인간의 코에

불어 넣으신 생기를 <루아흐> 보고

창조 때부터 인간 안에 성령이 있어서

인간을 영적인 존재라 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에서 '생기' <루아흐> 아니라

<느샤마> ""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느샤마>"

인간에게 불어넣으셨을

인간이 "생령" 되었다( 2:7) 하고,

생령을 히브리어로 <네페쉬 하야>라고 합니다.

특히, "생령" 되었다는 것을

인간과 동물의 구분점으로 보고

인간이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로

통상 알려져 있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주 부분을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생령이라는 <네페쉬 하야> 단어는

인간에게만 사용된 단어가 아니라,

아담이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줄

<네페쉬 하야> 동물에게도 사용된 ( 2:19)입니다.

사건의 절수 차이는 12 밖에 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2장의 <네페쉬 하야>라는 단어의 사용을 ,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근거로

생령(네페쉬 하야)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히브리어 본분상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야고보서 4 5절의 "우리 안의 "

창조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신 "생기"

보는 것은 약간은 무리가 있다고 보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서 4장의 위의 말씀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은

<느사먀> 아니라 성삼위일체 분인 성령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영까지 시기하신다는 말씀은,

성부 하나님께서 일체인 성령을 시기하실 정도로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이야기는

시적 사랑의 고백일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 자신을 시기할 정도로 인간 사랑해!"

라고 고백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도 지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편과 십자가가 생각납니다.

허림의 "마중"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사랑이 너무 멀어 올 수 없다면 내가 갈게

...

그대여 내가 먼저 달려가 꽃으로 서 있을게

꽃으로 서 있을게"

 

신은 너무나 인간을 사랑하셔서

높은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세워놓고

목을 길게 빼고, 팔을 벌려서,

사랑하는 인간을 마중 나오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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