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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8일(고전 12:12) 오늘 성서일과를 읽으며 기도합니다. 남과 북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임을 다시 회복하게 하시고, 이를 통해 주님 안에 한 식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솔공동체어울림 #비밀의떨림 #성서 #성경 #성경공부 #묵상 #렉치오디비나 #bible #biblestudy #quiettime #qt #lectiodivina
지그문트 바우만 퇴페는 박탈의 가장 교묘한 전략입니다. 당신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탁월하게 발견해내고 폭로한 대로 텔레비전은 (유혹과 꼬임을 통해) 우리의 관심을 또 그에 따른 '삶의 적실성'을 기술 습득에서 감각적인 인상들의 채집으로 바꾸어 놓죠.. 이는 당신이 개탄하는 '니트족' 부대를 만들어내는 퇴폐의 수법이에요. 실로 음험한 수법이죠. 계속되는 박탈에 쾌락을 부여하고, 노예 상태를 선택의 자유로 인식하고 느끼게 하니까요.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중에서) #솔공동체어울림 #울림 #책 #독서
2018년 9월 16일 말씀나누기 35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36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눅 6:35~36)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사건과 원수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보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솔직한 심정은 원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피부로 다가오지 않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정작 저를 괴롭힌 사람, 욕한 사람, 뒷..
2018년 9월 17일(고전 11장 26절) 성찬에 참여하는 일은 단순히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심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내 몸이 주님의 사랑을 담아,사랑이 되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인 듯합니다. 기도합니다.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를 주입해 주시고악한 저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 되게 하소서. #솔공동체어울림 #비밀의떨림 #성경 #성경공부 #성서 #묵상 #렉치오디비나 #bible #biblestudy #quiettime #qt #lectiodivina
2018년 9월 15일(요 3:17) 이번 대한예수교장로교 통합측의 총회를 난생 처음으로 동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다행인 일도 아쉬운 일도 있었습니다. 명성교회 세습을 재심하게 된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부의 정죄 분위기나 자기 신념으로 타인을 죄인으로 낙인 찍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서 요한복음서 3장 17절의 말씀이 절 두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복음주의자들일 듯한데 말입니다. 정죄와 비난에 급급한 총회는 얼마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아파하고 점검하고 시간을 들여서 연구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솔공동체어울림 #비밀의떨림 #성경 #성경공부 #성서 #묵상 #렉치오디비나 #bible #biblestudy #q..
2018년 9월 13일(눅 6:36) 어두운 예배당에 홀로 앉아 기도하다.십자가에 달린 청동예수상에게 물었다. "예수님! 왜 이렇게 검으세요." 그러자 예수님이 대답하셨다."너를 향한 사랑 때문에 나의 타는 심장이타다 못해 육체까지 타버렸단다." 그 순간 십자가의 목 박혀 있는 예수님께서 내려와 나를 안으신다. 그 타는 사랑의 저림이 보이지 않는 십자가를 타고 나에게 온다. #솔공동체어울림 #비밀의떨림 #묵상 #성경 #성경공부 #성서 #렉치오디비나 #bible #biblestudy #quiettime #qt #lectiodivina
2018년 9월 12일(눅 6:20) 복에 대한 선언이 가득한 성경에서 정작 예수님의 복 선언은 그리 자주 다루지 않습니다. 아니 팔복이라고 다루긴 합니다만팔복을 세상적 복을 받는 수단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예수님의 복 선언을 셈어적 어법으로 해석하면"복 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가난이 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가난이 복이라는 예수님의 복 선언을교회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이럴 용기가 목사들에게 있을까?" 저 자신에게도 묻게 됩니다. ㅜㅜ #솔공동체어울림 #비밀의떨림 #성경 #성경공부 #성서 #큐티 #묵상 #bible #biblestudy #quiettime #qt #lectiodivina
2018년 9월 8일(마1:18~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 1:23) 마리아와 요셉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파졸리니의 "마태복음"이라는 영화입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첫 장면입니다.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온 요셉을 보는 마리아의 난감한 눈빛과, 임신한 마리아를 보고 실망한 요셉의 허망한 눈빛, 그리고 실망하여서 어쩔 줄 모르는 요셉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슬픈 얼굴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 전 예수님의 부모가 가졌을 어려움과 아픔을 조금 상상하게 됩니다. 더불어, 요셉과 마리아의 깊은 신앙이 어떤 ..